가스트로노미의 어원 가스트로노미는 고대 그리스어 ‘가스트로노미아’에서 유래한다. BC 4세기경 그리스의 시인 아르케스트라토스는 시의 형식을 빌려 음식과 식재료에 관하여 노래했다. 아르케스트라토스는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미식가라 할 수 있다. 그로부터 2000년이 넘게 지난 후 프랑스에서 미식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 단어가 다시 생명을 갖게 되고 가스트로노미는 세계의 미식을 이야기하게 된다. 따라서 가스트로노미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프랑스 미식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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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미셸 브라 셰프의 영향을 받은 장진모 셰프(앤드 다이닝)의 요리. 미셸 브라의 시그니처 디시(signature dish·요리사의 가장 유명한 요리)인 ‘가르구유’를 한국의 채소를 사용하여 구현하였다.  
다양한 종류의 채소를 각각 적합한 형태로 조리한 후 플레이트에 올리고 허브 오일과 오이, 라벤더, 레몬그라스로 만든 소스로 제맛이 나게 한 것이다.

 ‘미식’이 뜨거운 화두다. 케이블TV, 종편 등 새로운 채널의 등장으로 다원화된 방송 매체는 흥행 소재의 빈곤을 소위 먹방으로 해소하고 있다. 미식이 시청자의 눈을 고정시키는 새로운 도구가 된 것이다. 채널을 돌리면 여기저기서 먹방이 쏟아지고 있고 한번 방송에 나온 셰프는 스타 셰프라는 명칭을 얻어 연예인이 되고 있다. 최근 스타 셰프를 둘러싸고 발신되는 잡음도 갑작스럽게 관심이 몰리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실로 ‘미식’이 단군 이래 최고의 상종가를 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 아니면 적어도 일관된 개념을 공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미식을 생활의 일부로 가져오게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역사를 조선시대로 되돌려 보면 유교의 영향, 또는 낮은 국민소득으로 서민 대다수의 일상 식생활은 미식과는 인연이 없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현재와 같지는 않았을 것이 명확하다.

오랫동안 서민과 함께 했던 보릿고개라든가 배고픔, 빈곤이라는 단어는 미식의 반대편 극단에 있다. 현대에 이르러 1970년대 이후 눈부신 산업화를 거쳐 나라에 부가 쌓이고 개인의 소득이 늘어났지만 정작 미식을 비롯한 문화생활을 즐길 시간은 없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산업화를 위한 노동에 쏟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서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기고 주5일제라는 선진국형 근무환경으로 바뀌면서 미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말하자면 ‘시간과 돈이 있는’ 시절이 됐다. 문화는 잉여 행위가 가능할 때 발전한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미식은 압축 성장하였다. 지난 15년간의 발전은 정말 놀라워서 이제 한국이 만들어내는 음식 수준은 질적인 면에서는 미식 선진국 부럽지 않다. 현재의 추이로 보아서는 양적인 면에서도 곧 따라잡을 것 같은 전망이다. 생산자 측면에서 선진국을 따라잡았다면 이제는 소비자 차례다. 미식을 제대로 소비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미식가라 생각한다. 이 미식이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절대적인 맛을 추구하는 것이 미식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음식을 찾는 것을 미식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만드는 요리사의 기술을 중요시하는 사람도 있고, 사용되는 식재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분위기도 맛에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서비스가 불만족스러우면 음식도 맛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에 따라 용어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 보니 미식에 관한 글을 쓰는 것도 쉽지는 않다. 맛은 주관적이라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나친 논쟁이 붙는 일도 자주 보게 된다. 그러나 미식은 생존을 위해 먹는 본능 이상의 무엇이다.

사전적 의미로 미식이란 먹을거리에 관한 미적이고 지적인 가치관과 세련됨을 추구하는 행위이며, 미식학이란 과학·기술·예술 등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먹는다는 행위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다. 클래식음악을 듣거나 명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감상 포인트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하듯이 미식 감상에도 문법이 필요하다. 자신의 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공유될 수 있는 지식과 규칙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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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전설적인 셰프 폴 보퀴즈의 대표요리인 농어 요리.

미식에도 여러 단계의 수준이 있다. 한식의 세계화를 이야기할 때 떡볶이나 김밥, 김치를 내세우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음악도 대중적인 음악에서 클래식 음악까지 여러 단계의 소비패턴이 존재하듯이 미식도 길거리음식에서 파인 다이닝(Fine Dining)까지 다양한 단계가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 파인 다이닝을 즐기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값이 비싸면 맛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므로 값이 비싼 음식은 미식으로 논할 가치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궤변이다.

파인 다이닝은 미식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가끔은 문화생활을 위해 미술관에 가거나 음악회에 가듯이 파인 다이닝도 사치가 아니라 일종의 문화현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여기서 ‘가스트로노미’라는 단어가 필요해진다. 현대에서 가스트로노미란 파인 다이닝을 의미한다. 굳이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미식을 위계화해서 가스트로노미가 가장 우위에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가스트로노미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범주 내의 미식을 논하고 싶은 것뿐이다. 그러지 않으면 주제가 중심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져 버릴 것이다. 한국인에게도 많이 알려진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가스트로노미란 먹는 것에 관련된 체계적 지식의 총체”라고 정의하였다.

가스트로노미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고 발전시킨 것은 프랑스지만,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가스트로노미의 중심은 여러 국가로 다원화되고 있다. 스페인의 페란 아드리아, 덴마크의 르네 레드제피, 페루의 가스통 아쿠리오가 미식의 민족주의를 주도하는 거장들이다. 이미 창조자의 반열에 오른 셰프들이 새로운 가스트로노미의 사조를 만들고 발전시키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격동의 물결은 한국 셰프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유럽과 북미, 호주를 비롯하여 한국인에게 생소했던 북유럽과 중남미까지, 세계를 누비면서 요리에 대한 경험을 쌓고 안목을 높인 셰프들이 한국의 가스트로노미 발전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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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나라의 가스트로노미 사조에서 영향받은 장진모 셰프(앤드 다이닝)의 고등어 셰비체. 페루의 전통음식인 셰비체를 응용하여 한국의 해산물과 다양한 채소 피클을 조화시켰다.

 

파인 다이닝의 문법

우리는 음악이나 미술을 ‘예술’이라고 부르며 크게든 작게든 예술에 대한 경외심을 지니고 있다. 음악에는 대중음악부터 클래식음악까지 다양한 장르가 있고 미술 분야 역시 그러하다. 일 년에 한 번, 아니 몇 년에 한 번이라도 직접 음악회 표를 구매했든, 초대장을 얻었든, 클래식 연주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이날은 복장에도 신경 쓰고 한껏 고양된 기분으로 우아하게 클래식 연주를 즐길 것이다. 아니면 어쩌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들르는 날은 자신이 무엇인가 문화생활을 즐겼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미식도 그러하다. 매일 편하게 먹는 집밥이나 어머니의 손맛, 아니면 직장 근처에서 한 끼 때우는 음식, 동료끼리의 회식, 또는 가족끼리의 부담 없는 외식도 맛있는 음식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미식이다. 그렇지만 누구나 한 번 정도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정중한 서비스를 받으며 음식을 즐기는 날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날은 아마도 기념일이나 프러포즈하는 날 등 특별한 날일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파인 다이닝이라는 말은 아주 생소했다. 흔히는 가격대가 높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파인 다이닝은 단순히 비싼 음식을 먹는 행위라기보다는 먹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과 서빙하는 사람이 삼위일체가 되어 만들어내는 하나의 퍼포먼스에 비유할 수 있다. 삼각형으로 조화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파인 다이닝이 완성된다.

여기서는 20세기 전까지 프랑스에서 이루어 놓은 가스트로노미의 역사 속에서 자취를 남긴 셰프와 레스토랑을 찾아볼 것이다. 21세기 이후의 역사는 세계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셰프와 레스토랑 차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셰프와 레스토랑은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이야기할 것이다.

 

 

*   [가스트로노미 혹은 미식]은 <주간조선>에 연재되고 있는 컬럼입니다.  본 글은 2015년 7월 13일자(2365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