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트로노미의 어원 가스트로노미는 고대 그리스어 ‘가스트로노미아’에서 유래한다. BC 4세기경 그리스의 시인 아르케스트라토스는 시의 형식을 빌려 음식과 식재료에 관하여 노래했다. 아르케스트라토스는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미식가라 할 수 있다. 그로부터 2000년이 넘게 지난 후 프랑스에서 미식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 단어가 다시 생명을 갖게 되고 가스트로노미는 세계의 미식을 이야기하게 된다. 따라서 가스트로노미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프랑스 미식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가스트로노미1

 

어릴 때 이모들(젊은 처녀였던)의 책장을 들여다보면 ‘양식 매너’를 다루는 책들이 있었다. 책을 펼치면 번들거리는 아트지에 사진도 꽤 많았는데, 웨이터가 의자를 빼주면 걸터앉는 모습, 나이프와 포크를 쥐는 모습, 수프를 떠먹는 방법 같은 생소한 문화가 담겨 있었다. 책에 나오는 식탁 예절은 서양 동화책을 읽으면서 상상하는 왕자와 공주가 있는 성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같았다. 예를 들어 포크를 떨어뜨리면 직접 줍지 말고 웨이터에게 눈으로 신호를 하면 알아서 새것을 갖다 준다, 이런 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가끔 졸업식 같은 특별한 날에 엄마 손 잡고 갔던 양식집에서 햄버그스테이크나 돈가스를 칼로 썬 경험 정도밖에 없었다. 나이가 좀 더 들어 호텔 양식당에서 수프부터 스테이크까지 나오는 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는데, 어릴 때 책에서 보았던 것처럼 스테이크를 먹다가 중간에 포크와 나이프를 나란히 놓고 식사가 끝났음을 알려도 웨이터가 냉큼 달려와 그릇을 치우지는 않았다. 책에는 포크와 나이프를 45도 각도로 벌려 놓으면 아직 식사 중이라는 신호이고 포크와 나이프를 나란히 놓으면 식사가 다 끝났다는 신호로 웨이터가 받아들인다고 써 있었는데 말이다.

짐작건대 이러한 매너 책은 당시 일본 것을 그대로 가져와서 낸 책들이었을 것이다. 책에 나오는 여러 가지 식탁 예절은 우리나라 양식당에서는 거의 소용이 없었다. 특히 현대의 파인다이닝에서는 시대 착오적인 매너 교재일 뿐이다.

그 이후로 많은 세월이 흘러 이제 우리는 양식당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프렌치 레스토랑, 이탈리안 레스토랑 이런 식으로 장르가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다. 최근에는 좀 더 나아가 파인다이닝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식탁에서의 예절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물론 이 식탁 예절은 어릴 때 책에서 보았던 내용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럼 이러한 파인다이닝의 문법, 또는 예절은 어떤 것일까? 문화라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생성, 발전, 소멸하는 것이 원칙이다. 가스트로노미 혹은 파인다이닝의 생성 과정을 살펴보면 현재의 파인다이닝의 위치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스트로노미의 기원을 보면 결국 궁정이나 귀족 문화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옛날 식탁의 예절은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프랑스 가스트로노미가 아직 전 세계 미식의 표준으로 군림하고 있던 2000년 초 파리에서 미슐랭 레스토랑을 몇 군데 방문한 적이 있는데 하나같이 까다로운 드레스코드를 요구하였다. 특히 남성의 경우 반드시 재킷을 입어야 했는데, 재킷을 입지 않은 남성은 레스토랑 측에서 다양한 사이즈의 검정색 재킷을 준비하고 있다가 입장하기 전에 빌려주는 것이었다. 같이 간 일행 중 한 명은 재킷을 준비해 오지 않아서 처음 몇 번은 재킷을 빌려 입고 식사를 하였지만 마지막 날은 남의 옷 입고 식사하는 것이 싫다고 예약해둔 미슐랭 레스토랑을 마다하고 혼자서 편한 다른 레스토랑에 가서 먹은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최근 파리의 미슐랭 레스토랑을 방문한 경험으로는 이제 그런 격식은 사라진 것 같다. 재킷을 입지 않은 남성 일행도 아무런 제지 없이 입장해서 식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예절이라고 하는 것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가스트로노미2

▲ 프랑스에서 19세기에 정착된 러시아식 코스 요리는 한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현수 셰프의 ‘이십사절기’에서는 한식 메뉴를 서양식 코스로 낸다. 위 사진 순서처럼 아뮈즈와 애피타이저가 여러 개 나온 후 메인과 디저트가 나오는 스타일은 20세기 후반에 정착된다. 서양에서는 메인 다음에 디저트가 나오지만, 한식에서는 메인 다음에 식사라고 하는, 밥 같은 탄수화물이 나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이십사절기’에서는 식사로 채개장(채소로 만든 육개장·뒷장의 11번 사진)을 낸다.

 

가스트로노미의 시작

르네상스 이후 미식의 역사는 인간이 불을 사용하여 요리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 기원이 시작되었겠지만,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미식은 르네상스 이후 프랑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르네상스 때는 현재의 이탈리아에 도시국가들이 번성했다. 르네상스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의 딸 카트린 드 메디치가 프랑스 왕에게 시집가게 된다. 발달된 문명의 피렌체 식문화가 결혼을 매개로 프랑스로 전달되는 사건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때 비로소 프랑스는 포크와 유리 그릇 등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전에는 테이블 위에 음식을 잔뜩 쌓아 올린 접시를 올려두고 손으로 집어먹었다고 한다. 즉 이때서야 비로소 식탁 매너(manire)라는 말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 레스토랑의 탄생

정치적 사건으로 보이는 프랑스혁명이 미식에 미친 영향도 상당하다. 프랑스혁명 이후 계급이 해체되면서 부르주아들이 귀족의 코드를 재구성하여 독자적인 가치관과 시스템을 확립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또한 귀족 소유였던 요리사들이 독립하여 자신의 레스토랑을 내게 된다. 레스토랑의 탄생은 곧 가스트로노미의 탄생이다. 레스토랑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산업이 되었다. 돈만 내면 왕족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화려한 식탁(오트 퀴진)을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미식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할 수 있다. 물론 레스토랑에서 돈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자는 서민이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뿐이었다는 함정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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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18세기 말 레스토랑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프랑스 요리가 본격적으로 근대화된다. 19세기에는 나폴레옹이 외교의 수단으로 가스트로노미를 적극 활용하면서 프랑스 오트 퀴진이 발달하게 되고 파리가 유럽 식문화의 중심이 된다. 이때 비평가에 의해 가스트로노미라는 말이 출현하고, 음식 비평가가 등장하여 미식과 사회를 연결함으로써 미식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다.

또한 러시아식 테이블 서비스 방식이 도입된다. 이것이 소위 코스 요리의 시작이다. 그전에는 테이블 위에 큰 접시를 올려놓고 음식을 담아놓으면 각자 덜어먹는 식이었다고 한다. 러시아는 추운 날씨 탓에 음식을 한 번에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고 코스로 서빙하거나 테이블에서 직접 조리하는 게리동 서비스가 있었다. 이것이 프랑스 요리와 접목되어 오트 퀴진의 새로운 질서가 탄생한다.

가스트로노미는 태생이 이렇기 때문에 식탁 예절도 복잡하고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현대적 의미의 식탁 예절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손님은 즐길 권리를 당연히 갖고 있지만 지켜야 할 의무도 다소 있다. 이러한 것이 지켜져야 요리를 만드는 사람, 서빙하는 사람, 먹는 사람의 삼위일체가 이루어져 완벽한 식사가 이루어진다.

1. 예약 문화를 지킨다. 특히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는 노쇼(No-Show)는 업장에 큰 피해를 주는 일이다.

2. 음식을 만든 요리사와 그 음식을 서빙해 주는 서버에게 적절한 경의를 표하면서 음식을 즐긴다.

3. 음식이 맛이 있다면 적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에 아까워하지 않는다.

4. 레스토랑에 주류 반입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삼가며 부득이하게 반입했을 경우 콜키지 차지(Corkage Charge)를 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 업장에 있는 주류를 일부 팔아주는 방법도 좋다.

5. 단, 이 모든 것은 그 레스토랑의 요리사가 정직한 재료로 정성을 다해서 요리하고, 서버는 자기 가족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서빙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해야 한다.

 

*   [가스트로노미 혹은 미식]은 <주간조선>에 연재되고 있는 컬럼입니다.  본 글은 2015년 7월 27일자(2367호)에 게재되었습니다.